월급은 그대로인데, 삼겹살은 2만 1천 원… 한국의 엥겔계수가 31년 만에 30%를 돌파했다
"먹고사는 게 이렇게 힘들었던 적이 있었나?"
마트에 장 보러 갔다가 계산대 앞에서 한 번쯤 멈칫해 본 적 있으신가요? 분명 작년이랑 똑같이 장을 봤는데, 영수증 숫자는 낯설게 커져 있는 그 느낌. 기분 탓이 아닙니다.
2025년 한국의 엥겔계수가 30.3%를 기록했습니다. 1994년 30.0%를 기록한 지 무려 31년 만에 다시 30%를 넘어선 것입니다.
숫자 하나가 뭐가 대수냐고요? 사실 이 숫자 하나에 지금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엥겔계수가 뭐길래 이렇게 난리야?
엥겔계수는 독일 통계학자 에른스트 엥겔이 1857년에 발표한 개념으로, 총소비 지출 중 식료품비(외식비 포함)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가난한 나라일수록 높고, 잘사는 나라일수록 낮아지는" 지표입니다.
한국은 1960~70년대에 엥겔계수가 50~60%를 넘었습니다. 그야말로 온 지출의 절반 이상이 먹는 데 들어갔던 시절이죠. 이후 고도성장을 거치며 꾸준히 낮아져, 1993년에는 29.4%를 기록하며 20%대에 접어들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27%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우리가 점점 잘살고 있다는 증거였죠.
그런데 지금 그 숫자가 거꾸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역주행입니다.
지갑은 얇아지는데 밥값은 왜 이렇게 오르나?
식비 지출 증가율, 소득 증가율을 훌쩍 넘었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한국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25.4% 늘었고 소비지출은 24.5% 늘었습니다. 그런데 식비 지출은 35.4%나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동안 집밥 재료비(식료품·비주류 음료 지출)는 33.1% 오른 반면, **외식비는 37.9%**나 뛰었습니다. 이미지 속 차트 숫자들이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서울에서 삼겹살 200g이 얼마라고?
한국소비자원 자료를 보면 올해 2월 서울 기준 주요 외식 메뉴 가격이 충격적입니다:

김밥 한 줄이 3,800원입니다. 분식집에서 "가볍게 한 끼"가 이제 4천 원 시대입니다. 삼겹살은 2인이 먹으면 고기값만 4만 원을 훌쩍 넘습니다.
먹거리 물가지수는 코로나19가 확산된 2020년 이후 6년째 소비자물가지수를 1~2%포인트 웃돌고 있습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가 2.1% 오를 때 식품물가지수는 3.2% 올랐습니다.
이상한 역설: 지갑은 얇아졌는데 외식은 안 줄인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등장합니다.
소득은 제자리고 물가는 오르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외식과 배달을 줄이지 않는 걸까요?
고령층: "연금으로 살아도 외식만은 못 끊겠다"
연금 소득에 의존하는 고령자들이 자동차, 의류, 가구 등 다른 소비는 줄여도 외식 등 식비 지출은 줄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외식을 소소한 낙으로 여겨온 세대에게, 밥 한 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사회적 연결이자 삶의 위안입니다.
청년층: "안되면 작은 사치라도"
고용 위축과 주거비 상승으로 가처분소득이 줄어든 청년층도 15만 원짜리 특급호텔 빙수, 개당 1만 원이 넘는 두바이 쫀득쿠키 같은 '작은 사치'에는 지갑을 열고 있습니다.
집도 못 사고, 미래도 불투명하고, 계층 이동도 막혀 있다 보니, "지금 이 순간의 맛있는 한 끼"에 집중하는 소비 심리가 자리 잡은 겁니다. 슬프지만 이해가 가는 심리입니다.
이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고 있는 일본도 엥겔계수가 치솟고 있습니다. 지난해 일본 엥겔계수는 28.6%로 45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약 20년 앞서 고령화·저성장의 길을 걸었습니다. 한국이 지금 일본의 과거를 닮아가고 있다는 분석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엥겔계수는 한때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빈곤 지표'였지만, 이제는 기후위기·물가·소비 구조 변화가 복합적으로 반영된 '사회경제 신호'로 변하고 있습니다.
집값이 밥값을 잡아먹는 구조
특히 주택 대출 이자가 증가하면서 소비 여력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집값이 5% 오를 때 50세 미만 가계의 후생은 0.23% 감소합니다. 젊은 층이 최초 주택 구매나 상향 이동을 위해 저축을 늘리거나 차입을 확대하면서 소비 여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가구 소득은 3.4% 증가했지만 세금, 사회보험료, 이자 비용 등 비소비 지출이 5.7% 늘어나 처분가능소득은 겨우 2.9% 증가에 그쳤습니다.
버는 돈은 조금 늘었지만, 세금·이자·보험료로 나가는 돈이 더 빠르게 늘면서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오히려 쪼그라든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난해진 건가?
엥겔계수가 30%대를 기록했다고 해서 우리 국민이 가난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경기 부진에 소득과 소비는 움츠러드는데, 고물가에 식비 지출만 빠르게 늘어나는 지금 상황이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건 단순히 "밥값이 비싸졌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먹는 것에 쓰는 돈의 비중이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삶의 영역여가, 문화, 교육, 저축이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삶의 질이 역주행하고 있는 겁니다.
마치며: 오늘 저녁 메뉴, 무엇을 드셨나요?
삼겹살 2만 원 시대, 김밥 4천 원 시대. 우리는 여전히 먹는 것만큼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게 한국인의 정서이자 문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 우리 사회가 보내는 구조적 경고 신호이기도 합니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올해 물가상승률이 3%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밥상 물가가 내려올 기미는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저녁, 한 끼 밥값이 유독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그건 당신만의 느낌이 아닙니다. 31년 만에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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