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 이야기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 수천 년을 이어온 혈통의 역사.
그리고 그 정점에 선 경주 최씨와 영남의 선비 정신.
▼ 스크롤하여 계속 읽기
1위가 박씨가 아니라고?
한국 최고(最古) 성씨 TOP 15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각 가문 족보를 기준으로 추정한 순위입니다. 선사시대 건국 신화에 뿌리를 둔 성씨들이 상위를 차지하며, 경주 고씨가 가장 오래된 성씨로 기록됩니다.
제주 고씨 (濟州 高氏)
고을나 · 高乙那 — 탐라 건국 신화 (삼성혈 주역)
제주 양씨 (濟州 梁氏)
양을나 · 良乙那 — 탐라 건국 신화 (삼성혈 주역)
제주 부씨 (濟州 夫氏)
부을나 · 夫乙那 — 탐라 건국 신화 (삼성혈 주역)
경주 박씨 (慶州 朴氏)
박혁거세 · 始祖居世 — 신라 건국과 함께 등장
고구려 고씨 (高句麗 高氏)
주몽 · 朱蒙 — 고구려 왕실 성씨 (계루부)
천안 전씨 (天安 全氏)
전섭 · 全攝 — 백제 건국 실제 공신, 환성군 봉
경주 이씨 (慶州 李氏)
알평 · 신라 6촌장 — 신라 유리왕 때 성 하사
경주 최씨 (慶州 崔氏)
소벌도리 · 蘇伐都利 — 신라 유리왕 때 성 하사
경주 정씨 (慶州 鄭氏)
지백호 · 智伯虎 — 신라 6촌장 후손
경주 손씨 (慶州 孫氏)
구례마 · 俱禮馬 — 신라 유리왕 때 성 하사
경주 배씨 · 경주 설씨
지타 · 호진 — 신라 6촌장 계열
김해 김씨 (金海 金氏)
가락국 수로왕 — 가야(금관가야) 왕실 기원
김해 허씨 (金海 許氏)
허황옥 · 수로왕비 — 인도 아유타국 황후 가문
경주 설씨 (慶州 薛氏)
토달미삼금 — 신라 초기 주요 성씨
경주 최씨 —
약 2,000년의 역사
서기 32년 신라 유리왕이 소벌도리에게 '최(崔)'라는 성씨를 하사한 것이 경주 최씨의 시작입니다. 이후 중시조 최치원을 거쳐 한국을 대표하는 대성(大姓)으로 성장했습니다.
📜 경주 최씨 연표
경주 최씨의 두 영웅
임진왜란의 의병장과 독립운동의 후원자 — 한 가문에서 400년에 걸쳐 피어난 충의(忠義)의 정신.
최진립 崔震立
"69세 노장(老將)의 불굴 — 화살이 고슴도치처럼 박힌 채 순절한 충신"
경상북도 경주 교동 출신으로 최치원의 17대손입니다. 1582년(선조 15) 진사시에 입격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즉각 의병장 김호(金虎) 휘하에 소모유사로 참전했습니다. 이후 1594년 무과에 급제하여 정식 무장의 길을 걸었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이미 69세의 노구(老軀)였음에도 공주 진영장(정3품)에 제수되어 최전선에 나섰습니다. 같은 해 12월 27일 용인 험천 전투에서 청군과 싸우다 장렬히 순절했습니다. 전사 1년 후 수습된 시신에는 화살이 고슴도치처럼 박혀 있었다고 기록에 전합니다.
전투가 불리해지자 최진립은 자신을 따른 종 옥동과 기별에게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이 충신으로 나라에 몸을 바치려는데, 어찌 충노(忠奴)가 되지 못하리오" 라며 남아 함께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당대에는 "양반이 노비에게 절을 한다"며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최진립의 후손들은 지금도 두 종의 제사를 함께 모시며 그 충성심을 기리고 있습니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9호로 지정된 충의당(忠義堂)이 그가 3살부터 살던 고택입니다. 그는 경주 최씨 최부자 가문의 1대 시조이자, 동학 창시자 최제우의 6대조이기도 합니다.
최준 崔浚
"재물은 분뇨와 같아 한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난다 — 그래서 모두 사회에 돌려드립니다"
최진립의 7대손이자 경주 최부자 가문의 12대·마지막 부자입니다. 경주 교동 태생으로 어릴 때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가훈을 이어받았습니다.
1914년 독립운동가 안희제가 찾아와 독립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최준은 이를 수락해 1919년 백산무역주식회사의 공동 설립자가 됩니다. 이 회사의 수익금 대부분은 상하이와 만주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광복 후 백범 김구는 최준을 경교장으로 초대해 낡은 장부를 펼쳤습니다.
최준이 보내준 독립자금 내역이 단 한 푼의 오차 없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최준은 장부를 확인하고 2층 마루로 나가, 안희제의 고향인 경남 의령 방향으로 절을 하며 목 놓아 울었습니다. 자신이 잠시 의심했던 것에 대한 자책이었습니다.
해방 후 최준은 남은 재산 전부를 털어 대구대학(현 영남대학교)과 계림학숙을 설립했습니다. 이로써 12대 300년을 이어온 최부자 가문의 역사가 막을 내렸습니다. 그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습니다.
경주 최부자 가문
6가지 가훈(家訓)
300년 부를 지탱한 비결 — 단순한 경영 원칙이 아닌 인간 존중의 철학
영남의 선비 정신을 잇다
영남지역 대표 명문가 TOP 10
단순한 부를 넘어 500년 조선의 정신적 기둥을 세운 학문과 절개의 가문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진정한 표본들입니다.
경주 최씨 — 최진립·최준
경주 교동마을 · 12대 300년 부 유지,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가훈 실천
진성 이씨 — 퇴계 이황
안동 도산면 · 영남학파 창시, 도산서원의 토대. 조선 성리학의 최고봉
풍산 류씨 — 서애 류성룡
안동 하회마을 · 임진왜란 극복의 일등공신, 하회마을 유교 문화 보존
안동 권씨 — 권벌·권우
안동 일대 · 조선 최고의 가문 중 하나, 영남 관료의 중심
의성 김씨 — 학봉 김성일
안동 내앞마을 · 구학문·일제강점기 수업 도입 및 독립 배출, 안동의 정신적 구심점
연일 정씨 — 포은 정몽주
영천·포항 일대 · 고려 말 충절의 상징, 영남학파의 정신적 원류
월성 손씨 — 우재 손중돈
경주 양동마을 · 퇴계 이황의 스승, 드넓은 수양과 가풍 실천
재령 이씨 — 갈암 이현일
안동·영양 · 음식디미방 어머니 가문, 영남 남인의 거두
광산 김씨 — 김진(사촌파서)
안동 오천마을 · 한 집안에서 판서급 4명 배출, 학문·관직 최고 명문
함안 조씨 — 어계 조려
함안·의령 일대 ·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한 영남 남부 유학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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