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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병다육이마을이야기

조상을 잊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방식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by 와인병다육이세상사는이야기 2026.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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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을 잊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방식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제사와 시제, 그 긴 이별의 풍경

음력 10월이면 전국 곳곳의 선산에서는 문중 사람들이 모였다. 도포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정한 차림으로
산을 오르고, 묘소 앞에 제물을 차리고, 축문을 읽고, 음복을 나누며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시제(時祭).
5대조 이상의 조상을 문중 단위로 모시는 이 제사는 단순한 의례가 아니었다. 누가 누구의 자손인지를 확
인하고, 흩어진 혈연의 지도를 한 자리에 펼쳐두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선산에는 노인 몇 명만 남아 있다.

숫자부터 보자 — 제사는 얼마나 빠르게 사라지고 있나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2023년 리서치뷰에 의뢰해 성인 1,500명을 조사한 결과는 꽤 충격적이었다. 응
답자의 55.9%가 앞으로 제사를 지낼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현재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응답이 62.2%인
데, 앞으로도 계속 지내겠다는 사람은 44.1%에 그쳤다. 오늘 제사를 지내는 사람 열 명 중 거의 네 명은
이미 마음속으로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 긴 시계로 보면 추락의 기울기가 더욱 가파르다. 농촌진흥청 소비자 패널 조사에 따르면 2014년 설에
차례를 지낸다고 응답한 비율은 71%였다. 그것이 2018년 65.9%로 내려앉더니, 2023년에는 39%, 2024
년 추석 기준으로는 41%대로 주저앉았다. 10년 사이에 30퍼센트포인트가 증발한 것이다. 4인 가구 기준
으로 2024년 추석 제수비용 평균이 33만 4,828원, 2026년 설 기준으로도 30만 5,916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간 제사를 네 번 이상 지내는 집의 연간 부담은 가볍게 100만 원을 넘긴다. 비용은 오르는데
모일 사람은 줄고, 제사를 이어갈 이유는 희미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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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사를 끊고 있나 — 며느리가 아니라 시어머니였다

흔히 제사 폐지를 요구하는 세대는 2030 세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국가기록원의 제사 풍속도 변
화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제사 간소화와 폐지를 주도하는 세대는 오히려 50·60대 여성들, 즉 시
어머니 자리에 오른 이들이었다. 수십 년간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쳐온 사람들이 스스로 먼저 매듭을 짓
고 있는 것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2019년 조합원 6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명절 가사노동이 "여성이 주로
하고 남성이 거드는 정도"라는 응답이 73.2%에 달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는 그 흔적이 몸에도
새겨져 있다. 명절 이후 손목터널증후군 환자의 80%가 여성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사후에 자신의 제사를
지내줬으면 좋겠다고 답한 비율은 남성 16.7%, 여성 2.4%였다. 평생 상을 차려온 쪽이 오히려 제사를 가
장 먼저 끊겠다고 나선 셈이다.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2026년 발표한 조사에서는 기혼자들의 명절 최대 고민 1위가 '명절 선물 등 지출 부
담(26.6%)'이었다.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 조사에서도 제사를 지내지 않으려는 이유로 "가부장적이고 성
차별적 요소가 있다고 느껴서"가 12.5%를 차지했다. 의례의 형식 안에 쌓인 피로가 세대를 넘어 전달되
지 않겠다는 의지가 수치로 드러나고 있다.

시제는 어떻게 되고 있나 — 선산에 아무도 오지 않는다

가정 제사보다 더 조용히,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이 마을 단위의 시제다.
시제는 5대조 이상의 묘소를 문중이 함께 찾아 지내는 제사로, 한식이나 음력 10월 상달에 거행되어 왔
다. 재실(齋室)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위토(位土)의 수확물로 제물을 마련하며, 도포와 유건을 갖춘 자손
들이 묘소마다 제관을 정해 순서대로 제를 올렸다. 문중의 결속을 확인하는 동시에, 흩어진 혈연을 한 장
소에 불러 모으는 거의 유일한 장치였다.
그러나 그 구조를 받쳐온 세 가지가 동시에 무너지고 있다.
첫째는 사람이다. 농촌 인구의 고령화율은 2022년 기준 26.1%이며,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89개 시·군
·구 중 84개가 농촌이다. 특히 면 지역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42.2%에 달한다. 시제를 주도해야 할 중
장년 세대 자체가 도시로 빠져나간 지 오래다. 농가 인구 200만 명 선이 무너진 지금, 선산을 지킬 사람이
없다.
둘째는 묘소다. 화장률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묘소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봉안당(납골당)과 수목장이 일
반화되면서, 시제를 지낼 '장소'의 전제 조건이 무너지고 있다.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인 시제는, 묘소가 없
으면 그 형식 자체를 유지할 수 없다.
셋째는 문중이다. 학계에서는 "현재에도 제사를 올리는 집은 조상 숭배가 아니라 친척 간 관계 유지와 관
례로 하는 것이며, 종교적 이유는 매우 약해졌다"고 본다. 문중 구성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음력 날짜
를 일요일이나 공휴일로 옮기는 문중이 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시제가 의무에서 선택으로 미끄러졌
다는 신호다.

도시화가 완성한 것 — 선산보다 공항이 붐빈다

2023년 추석 당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은 출국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같은 시간, 전국 곳곳의
선산에는 노인들만 남아 있었다. 이 두 장면이 오늘 한국 제례 문화의 현주소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은 2015년 27.2%에서 2021년 33.4%로 올랐고, 2050년에는 전체 가구의
39.6%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사를 주도해야 할 세대인 50대의 1인 가구 비율이 15.4%, 60대는
16.4%다. 가족이라는 단위 자체가 작아지고 흩어지고 있다. 자녀가 한둘이고, 그마저 멀리 사는 집에서는
기일에 모이는 인원이 서너 명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제사는 여럿이 반드시 모여야 하는 것은 아니
지만, 현실에서 제사를 지속시키는 동력은 가족의 규모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도시화는 시제의 물리적 조건도 앗아갔다. 시제에는 재실이 있어야 하고, 위토가 있어야 하며, 산지기가
있어야 한다. 그 인프라 전체가 도시 이주와 함께 해체됐다. 시제를 지내는 일이 시대가 변하고 생업으로
바빠지면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지역 민속 기록 곳곳에 이미 오래전부터 적혀 있었다.

앞으로 제사와 시제는 어디로가는가 ? 

이 흐름이 앞으로 역전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인구 구조, 가족 형태, 경제적 부담, 젠더 감수성 어느 방향
에서 봐도 제사는 줄어드는 쪽으로 수렴한다.
그렇다고 제사와 시제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두 갈래의 흐름이 동시에 진행될 것이다.
하나는 '형식을 버리고 마음을 남기는' 방향이다. 기일에 가족끼리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으로 외식을 하거
나, 자정 제사를 저녁으로 당기고 전 대신 고인이 즐기던 음식을 올리는 방식이 이미 확산되고 있다. 성균
관 의례정립위원회도 2023년 현대화 권고안에서 "평상시 간소한 반상 음식으로 차리고, 고인이 좋아하시
던 음식을 올려도 좋다"고 밝혔다. 봉안당과 수목장의 일상화로 추모의 장소도 산소에서 추모관과 일상의
공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다른 하나는 '불천위(不遷位)' 중심의 보존이다. 성균관은 큰 공훈을 세워 영구히 사당에 모시는 불천위 제
례에 대해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존할 것을 당국에 건의했다. 시제도 마찬가지다. 전국 단위의
대형 문중은 종친회 조직과 기금을 바탕으로 시제를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소수의 유지
(維持)이지, 일반 가정으로의 확산은 아니다.
결국 앞으로의 제사와 시제는 두 층으로 나뉠 가능성이 크다. 국가와 문중이 보존하는 '문화재로서의 제
례'와, 가족이 자신의 방식으로 조용히 기억하는 '개인화된 추모'가 공존하는 시대. 의례의 무게는 국가와
유족이 나눠 지고, 보통 가정은 격식 없이 조상을 기억하는 방향으로 수렴할 것이다.

우리가 맞이할 자세에 대하여

이 변화를 두고 전통의 붕괴니, 조상에 대한 망각이니 하는 말들이 나온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수십 년
간 가장 성실하게 제사를 지켜온 세대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들이 전통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한계와 형편을 솔직하게 인정한 것이다.
민속학자 주영하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한국의 제사 음식 문화는 시간이 갈수록 음식의 의미보다 준비하
는 사람의 부담이 앞서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사회학자 조한혜정 교수가 "한국의 가족 의례는 정서적 결
속보다 경제적 부담으로 작동하는 방향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례가 관계를 만드
는 것이 아니라 의례가 관계를 소진시키는 방향으로 흘렀을 때, 의례의 형식을 놓는 것은 관계를 포기하
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취할 자세는 아마 이것일 것이다. 형식이 사라진다고 해서 기억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믿는
것. 제삿날 차가운 부엌에서 홀로 전을 부치는 것만이 조상을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인
정하는 것.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던 냉면 한 그릇을 들고 봉안당을 찾는 일도, 기일 저녁에 가족끼리 모여
그 사람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기억이라는 본질에서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시제의 선산에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뿌리를 잃은 것은 아니다. 다만 뿌리를 기억하는 방식
이 바뀌고 있을 뿐이다. 그 변화 앞에서 죄책감보다는 솔직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
있는 사람답게, 기억을 이어가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참고: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 제례 문화 관련 국민인식조사(2023),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제수비용 조사(2024·2026),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명절 가사노동 설문(201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손목터
널증후군 통계, 통계청 1인 가구 추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촌 고령화 현황(2024), 결혼정보회사 가연
연애·결혼 인식 조사(2026), 농촌진흥청 소비자 패널 차례 인식 조사(2014·2018), 한국리서치 HRC
Opinion 차례 인식 조사(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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