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ing Trend Report · 2026
망가질수록더 잘 팔린다
깔끔하게 세팅된 광고보다 살짝 어설프고 날것 그대로인 콘텐츠에 사람들이 더 열광하는 시대. 성수동 한복판 옥외광고 신경전부터 걸그룹 밈 하나로 뒤집힌 지자체 홍보, FIFA의 로고 금지령을 되받아친 청바지 브랜드까지 요즘 마케팅판을 흔들고 있는 'B급 감성'의 실제 사례들을 모았다.
TOPIC · B급 마케팅 / 브랜드 밴터
KEYWORD · 상생형 디스전 · 밈 마케팅 · 병맛 콘텐츠

Case 01 성수동 · 2026.06
옆 건물에 현수막 하나 걸었을 뿐인데, 패션 플랫폼 두 곳이 붙었다
시작은 정말 별거 아니었다. 2026년 6월 16일, 무신사가 상반기 최대 할인 행사 '무진장 여름 블랙프라이데이'를 한창 진행하던 성수동 메가스토어 바로 옆 건물 외벽에 온라인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의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원래는 지그재그 입점 브랜드 '착한구두'의 성수 매장 오픈을 알리려던 평범한 옥외광고였는데, "쇼핑은 직잭으로, 배송은 직진으로"라는 문구가 하필 경쟁자 코앞에 붙으면서 SNS에 현장 사진이 퍼지기 시작했다.
무신사는 정색하지 않았다. 공식 인스타그램에 지그재그를 태그하며 "그건 돌아가는 사람들 얘기고, 무신사는 똑바로 직진한다"는 패러디 게시물을 올렸고, 지그재그도 곧바로 "이거 때문에 야근합니다. 기다리세요"라고 맞받았다. 몇 시간 뒤 지그재그는 앱 배너를 "숙녀들은 무신사 말고 다 지그재그랑 해"로 바꾸고, 무신사의 시그니처 카피 "다 무신사랑 해"를 정면으로 비틀었다.
브랜드 밴터의 하이라이트
진짜 재미는 그다음이었다. 지그재그가 '무쉰사'라는 이름의 10% 중복할인 쿠폰을 먼저 내놓자, 무신사는 "지그재그가 긁힌 것 같다"며 '지긁재긁'이라는 이름의 20% 할인 쿠폰으로 맞불을 놓았다. 이후엔 서로 사과문까지 패러디해서, 사과문 안에 상대 브랜드명을 은근슬쩍 박아 넣고 자사 VIP 등급 혜택을 뿌리는 '등급 뺏기 전쟁'으로 번졌다.
구경꾼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당근마켓은 "사이즈 안 맞으면 당근하세요"라며 댓글을 남겼고, 오뚜기는 이 싸움을 자사 제품에 빗대 "진라면 매운맛과 순한맛 급의 싸움"이라고 위트 있게 참전했다. 심지어 프로야구단까지 "저도 여기 껴도 될랑가요"라며 댓글 행렬에 합류하면서, 하나의 온라인 놀이 문화가 만들어졌다.
왜 통했나 — 업계에서는 이 사건을 우연한 해프닝이 아니라 전략적 신호로 본다. 무신사는 남성·스트리트 패션에서, 지그재그는 여성·동대문 패션에서 출발해 원래 다른 시장에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두 플랫폼이 서로의 영역으로 확장하며 정면 경쟁 구도가 만들어졌다. 후발주자 지그재그가 무신사의 상징적 거점인 성수에 팝업을 연 것부터가 계산된 도전장이었고, 예전 같으면 조용히 넘겼을 무신사가 적극적으로 응수한 건 그만큼 시장 지배력에 자신감이 붙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Case 02
거제시 · 지자체 밈 마케팅
예산 한 푼 없이, 유튜브 영상 하나가 지역을 살렸다
'거제야호'는 애초에 마케팅이 아니었다. 5인조 걸그룹 리센느의 리더 원이(거제 출신)가 운영하는 개인 유튜브 채널에, 일본 국적 멤버 미나미가 갸루 콘셉트로 출연해 남긴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원이가 "너 이러고 거제 가면 거제 시민들에게 혼나"라고 하자 미나미가 해맑게 "거제 야호!"라고 받아친 장면인데, 여기서 '야호'는 등산할 때 외치는 그 야호가 아니라 일본어 얏호(やっほー)를 한글로 표기한 것으로, 젊은 세대가 가볍게 쓰는 인삿말이다. 그러니까 '거제야호'는 "거제 안녕~" 정도의 뉘앙스다.

영상이 숏폼을 타고 퍼지자 가장 빠르게 움직인 건 거제시 자신이었다. 시 공식 SNS 계정이 먼저 "거제야호"라는 댓글을 남기며 반응했고, 2026년 5월 22일 리센느 멤버 전원을 거제시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흥미로운 건 위촉 방식이다. 격식 있는 행사장 대신 부시장이 직접 카메라 앞에서 야호를 외치며 위촉장을 건네는 숏폼 콘텐츠로 대체한 '디지털 콘텐츠형 위촉'을 처음 시도한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
영상에 등장한 거제덕포해수욕장 등 관광명소를 실제로 찾아온 방문객들이 늘었고, 한 지역 상인은 유튜브 노출 이후 매출이 2~3배 뛰었다고 전했다. 시청자 상당수가 18~34세였고, 기존 거제시 SNS에서 비중이 낮던 20~30대 남성 유입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거제시장은 이 협업을 "관광 콘텐츠 관련해 많은 사람들에게 거제를 새롭게 알릴 수 있는 훌륭한 기회"라고 평가했고, 시는 이후에도 리센느와 함께 브이로그 형식의 관광 콘텐츠를 이어서 제작하고 있다. 잘 만든 홍보 예산보다 잘 걸린 밈 하나가 훨씬 넓은 반경까지 도달한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Case 03
B급 감성의 주류화
이젠 톱스타도, 대기업도 앞다퉈 망가진다
과거엔 하위문화 취급을 받던 B급 감성이 지금은 시장의 메인스트림이 됐다. 대표 사례가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의 20주년 캠페인이다. 롯데칠성음료는 20주년 모델로 개그우먼 이수지를 발탁해, 2007년 이효리·2016년 배우 수지·2021년 제니가 각각 찍었던 레전드 광고 세 편을 그대로 패러디하게 했다.

2026년 5월 22일 공개된 이 3부작은 소주 광고 특유의 몽환적인 표정 연기와 카메라 워크를 이수지 특유의 능청스러운 코미디로 비틀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흥미로운 건 부수 효과였는데, 사람들이 패러디 영상을 보고 이효리·수지·제니의 원본 광고까지 다시 찾아보면서 오래된 광고 자산까지 덩달아 소환됐다는 점이다.
왕자 변신 로밍 광고
탑급 배우들도 예외가 아니다. 배우 지창욱은 한 통신사 로밍 광고에서 공항 캐리어를 끌고 가다 스마트폰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망토를 걸치고 왕자로 변신하는, 다소 오글거리는 연출을 그대로 소화했다. 오히려 이 모습에 "지창욱 씨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댓글이 달릴 정도로 호감으로 이어졌다.
왜 지금 B급이 먹히나 — 전문가들은 소비자가 '반전의 쾌감'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완벽한 이미지의 톱스타가 솔직하게 망가지는 순간, 대중은 그걸 가식 없는 모습으로 받아들이며 브랜드에 더 큰 호감을 보낸다. 여기에 장기화된 경기 불안 속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맥락 없이 웃긴 '병맛' 콘텐츠가 잠깐의 탈출구가 되어준다는 분석도 있다. 숏폼 환경에서는 애초에 30초 안에 맥락을 쌓기도 어려운 만큼, 맥락 없이 곧바로 웃기는 편이 더 잘 먹힌다는 것이다.
Case 04
2026 북중미 월드컵 · 역발상 마케팅
가리라고 했더니, 가려서 더 유명해졌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번 월드컵에서 '클린 스타디움'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공식 후원사가 아닌 브랜드 로고는 경기장 안팎 어디서도 노출할 수 없다는 방침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의 리바이스 스타디움도 대회 기간에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스타디움'으로 불려야 했다. 매사추세츠의 질레트 스타디움 역시 '보스턴 스타디움'으로, 작업자들이 6만4천여 개 좌석에 새겨진 로고를 일일이 테이프로 가려야 했을 정도로 규정은 촘촘했다.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는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기장 간판을 흰 천으로 덮되, 자사 상징인 '배트윙' 로고 모양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천을 재단한 것이다. 글자는 안 보여도 누구나 봐도 리바이스라는 걸 알 수 있게 만든 셈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공식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도 이 가려진 로고 이미지로 바꿔버렸다.
공식 인스타그램 캡션
리바이스는 로고가 가려진 경기장 영상을 올리며, 이름이 지워진 그 스타디움에 전 세계인을 환영한다는 취지의 재치 있는 문구를 남겼다. FIFA 규정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대신, 유쾌하게 받아치는 톤을 택한 것이다.
반응은 뜨거웠다. "가렸는데 오히려 더 눈에 띈다", "이게 진짜 브랜딩이다"라는 댓글이 이어졌고, 이 사례는 곧잘 '스트라이샌드 효과'(가리려는 시도가 오히려 더 큰 주목을 부르는 현상)로 설명된다. 케첩 브랜드 하인즈도 상표가 검은 테이프로 가려진 자사 제품 사진을 SNS에 올리고 이를 소재로 한정판까지 내놓았고, 질레트 역시 흰 천을 자사 면도 크림 모양으로 만들어 "우리가 가리는 방식 정도는 우리가 고를 수 있지 않냐"는 메시지를 던졌다. FIFA의 규제가 오히려 브랜드들의 창의력을 자극한 셈이다.
Warning
재미만 좇다간 역풍 맞는다
물론 이 모든 흐름이 항상 안전한 건 아니다. 최근 기업들이 AI로 더 자극적인 B급 밈을 만드는 경쟁이 붙으면서, 선을 넘는 사례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한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는 AI 밈을 활용해 불륜을 소재로 한 숏폼 콘텐츠를 올렸다가 거센 역풍을 맞고 결국 공식 사과했다.
핵심은 균형 감각 — 대중의 눈높이에서 유쾌하게 망가질 줄 아는 유연함과, 그 안에서도 핵심 메시지와 제품 본질을 잃지 않는 균형이 요즘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꼽힌다. 처음처럼 캠페인에 대해서도 광고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패러디와 유머 코드에 지나치게 치중해 20주년이라는 브랜드 헤리티지, 제품 본연의 가치가 오히려 희석됐다"는 지적이 함께 나왔다. 웃기는 것과 브랜드를 남기는 것은 별개의 과제라는 뜻이다.
재미는 소비자 눈길을 끄는 미끼일 뿐, 결국 남는 건 브랜드 메시지와 제품 본질이다
경쟁사 도발에 대응할 땐 비방이 아니라 위트로 받아쳐야 소비자 혜택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화제성이 실제 매출과 브랜드 호감으로 이어지려면 '반짝 인기'로 끝나지 않을 후속 콘텐츠 전략이 필요하다
완벽하게 짜인 광고보다,
살짝 어설픈 진짜가 더 오래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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