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국가정원 겨울 산책기 3탄
비워진 계절 속에서 발견한, 정원의 또 다른 얼굴
겨울의 정원은 왜 이렇게 솔직한 걸까요.
봄이면 꽃으로, 여름이면 초록으로 자신을 치장하던 순천만국가정원이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앙상한 가지, 마른 풀잎, 흙빛 언덕. 그런데 이상하게도, 비워질수록 더 깊이 보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으로 다시 찾은 이 겨울 정원에서, 저는 꽤 오래 머물렀습니다.

돌과 나무가 빚어낸 시간의 조각
정원의 한켠, 크고 작은 바위들 사이로 나무들이 자라나 있는 구역에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봄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풍경인데, 겨울이니까 비로소 눈에 들어왔습니다.
잎을 다 떨어뜨린 채 하늘을 향해 뻗은 가지들, 그 곁을 굳건히 지키는 소나무의 짙은 초록, 그리고 붉은 동백 한 그루가 마치 마지막 불씨처럼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오랜 세월을 버텨온 사람의 등 같았습니다. 굽고, 비틀리고, 그래도 살아있는.
바위와 나무가 어우러진 한국식 암석 정원 구역. 겨울 햇살 아래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나무들의 형태가 인상적이다.

물에 비친 하늘, 고요한 수변 산책로
연못가에 섰을 때, 세상이 두 개로 나뉘었습니다.
바람이 잠든 날이었는지, 수면은 거울처럼 고요했고 그 위에 하늘이 통째로 담겨 있었습니다. 물가를 감싸는 크고 작은 조약돌들이 질서 없이, 그러나 자연스럽게 쌓여 있었고 그 경계를 따라 걸으면 마치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잔잔한 물결, 먼 산의 반영, 풀 한 포기 없이 드러난 황토빛 언덕. 이 풍경은 계획된 아름다움이 아니라 계절이 선물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돌로 이루어진 수변 산책로와 잔잔한 수면. 물 위로 나무들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수변 너머로는 황금빛으로 물든 잔디 언덕이 완만하게 이어졌습니다. 그 위를 걷는 몇몇 사람들의 작은 실루엣이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정원의 수상 무대와 반원형 부두가 물 위로 조용히 떠 있었습니다.
저 멀리 아파트 공사 크레인이 보였지만, 그것조차도 이 겨울 풍경 속에서는 낯설지 않았습니다. 자연과 도시의 경계에 서 있는 이 정원의 솔직한 현재 모습이기도 했으니까요.



바람 속에 날아오르는 철새들
정원 한가운데서 가장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철새 조각상들이었습니다.
녹슨 철판을 구부리고 잘라 만든 두루미와 기러기의 형상들. 단순한 선으로 이루어진 그 실루엣이 구름이 빠르게 흐르는 하늘 앞에 서 있으니, 정말로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았습니다.
노란 팬지가 무리 지어 피어난 꽃밭 너머로 기러기 두 마리가 날갯짓하는 장면, 나무 벤치와 마른 억새 사이로 군무하는 철새 조각들, 꽃밭 위로 비상하는 단독 실루엣.
순천만 갯벌로 날아드는 철새들에게서 영감받은 이 조각들은 국가정원과 순천만이 하나의 이야기임을 조용히 말하고 있었습니다.
꽃밭 위로 날아오르는 듯한 철새 형상의 조각들. 코르텐강의 붉은 빛이 겨울 하늘과 대비를 이룬다.







태국 정원 이국의 향기가 머무는 곳
걷다 보면 갑자기 공간이 바뀝니다.
어느 순간, 붉은 짜끄리 양식의 지붕과 탁 트인 모래 광장, 그리고 짚으로 둘러싸인 야자수들이 나타납니다. 태국 정원입니다.
태국 국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그 옆에는 태국식 사당을 본뜬 붉은 신당이 서 있습니다. 그 앞에는 당당하게 코를 치켜든 코끼리 조각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이 한 공간에서 잠시 타국을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겨울에 웅크려 있는 열대 정원이라는 묘한 대비감. 오히려 그것이 이 공간을 더 인상적으로 만들었습니다.
태국 전통 양식의 건물과 코끼리 조형물이 어우러진 태국 정원 구역. 야자수에 둘러싸인 이국적인 풍경.






분홍 시트로엥과 파루 가든
정원을 걷다 마주친 뜻밖의 장면 하나.
나무들 사이, 앙증맞은 분홍색 시트로엥 2CV가 서 있었습니다. 차창에 살짝 낀 흙먼지와 바퀴 옆에 놓인 돌멩이들이 꼭 누군가 방금 세워두고 정원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멈춰 사진을 찍었는데,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조금 더 걷다 보면 PARU Garden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알록달록한 새 조각상이 맞이합니다. 기하학적 도형들로 이루어진 이 조각은 어딘가 장난기 넘치고 발랄했습니다. 무채색의 겨울 정원에서 혼자 빛나는 것 같았습니다.
분홍색 빈티지 자동차 포토존과 PARU Garden 입구의 컬러풀한 조형물.




사가 일본식 정원 다른 나라의 계절
황토색 흙담과 짚으로 엮은 지붕, 반쯤 열린 목조 문 사이로 보이는 석등 하나.
일본 사가현과의 우호 협력을 기념해 조성된 이 정원은, 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치밀하게 다듬어진 정형식 정원, 낮게 깔린 돌길, 그리고 붉은 동백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는 나무들.
한국의 정원이 자연을 담되 자연스럽게 두는 편이라면, 이 일본식 정원은 자연을 정성껏 다듬고 배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두 나라의 미감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새삼 생각하게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한일 우호의 상징으로 조성된 사가 일본식 정원 입구. 담담한 아름다움이 인상적이다.








겨울 정원이 건네는 말
꽃이 만발한 봄날의 정원도 아름답겠지만, 저는 이 겨울 산책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드러나 있어서, 아무것도 감추지 않아서, 오히려 더 솔직하고 깊었습니다.
마른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고, 두루미 조각은 하늘을 향해 날갯짓하고, 태국 코끼리는 짚을 두른 채 봄을 기다리고, 석등 곁의 동백은 고요히 붉게 피어 있었습니다.
비워져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정원은 늦겨울에 그 진심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와인병다육이세상사는이야기
와인병다육이세상사는이야기
창조적이고 유니크한 와인병다육이의 세상사는 이야기
kenny762.tistory.com
'플랜테리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순천만 국가정원 식물원 완전 정복 열대 낙원부터 빛의 동굴까지 6탄 (1) | 2026.03.11 |
|---|---|
| 순천만 국가정원5탄 봄의 서막, 꽃과 초록의 향연 (0) | 2026.03.11 |
| 순천만국가정원 겨울 산책기 4탄 유럽의 정원들이 순천에 모이다. 영국·스페인·이탈리아 그리고 메타세쿼이아 길 (0) | 2026.03.10 |
| 순천국가정원 2탄 겨울이 빚어낸 고요한 아름다움 (5) | 2026.03.09 |
| 봄의 문턱에서 만난 순천국가정원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발걸음을 멈추다 (2) | 2026.03.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