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Essay · 2026. 05
바삭함이
품은 시간 그때 그맛 돈까스
돈까스 한 조각에는 오스트리아의 궁중 요리부터 1960년대 명동의 파인다이닝, 택시기사의 든든한 한 끼, 급식실의 설레던 아침까지 — 한 세기가 넘는 식문화의 켜가 고스란히 쌓여 있다.
평행선 같은 입맛을
하나로 모아주는
음식"
5월이면 거리마다 꽃이 피고, 가족들이 손을 잡고 외식에 나서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어린이날에 어버이날까지 겹친 '가족의 달', 그 풍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돈까스다.
아빠는 매콤한 제육볶음, 엄마는 예쁜 파스타를 원할 때, 두 입맛의 평행선을 단번에 수렴시키는 음식. 전골집에 가도, 죽밥집에 가도, 심지어 안주가 가득한 술집 메뉴판 구석에도 어김없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돈까스다. 어른들에게는 든든한 보험이고,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보상이다.
그런데 이 친근한 음식 한 접시에, 사실 몇 개의 대륙과 두 세기가 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빈의 궁중 요리가
도쿄 골목을 지나 서울에 오기까지
돈까스의 먼 조상은 오스트리아의 슈니첼(Schnitzel)과 프랑스의 커틀렛(Côtelette)이다. 얇게 두드린 고기에 고운 빵가루를 입혀 버터에 지져내는 서양식 요리로, 한때 국내에서는 '돈까스'가 틀린 말이고 '커틀렛'이라 불러야 한다는 논쟁이 일기도 했다.
이 서양 요리가 19세기 말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결정적인 변신을 겪는다. 일본인들은 젓가락으로 집기 편하도록 미리 썰어서 내놓기 시작했고, 고운 빵가루 대신 뾰족하고 거친 판코(パン粉) 빵가루를 입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 — 버터로 굽는 대신 기름에 완전히 담가 튀기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즐겨 먹는 돈까스의 탄생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릴 때 먹어온 경양식 돈까스는
사실 일본에는 없다. 그것은 한국이 오롯이 발전시킨 음식이다.
깍두기, 단무지, 풋고추와 함께 나오는 경양식 돈까스. 테이블보는 서양식인데 반찬은 완전한 한국식이다. 이 조합은 어떤 요리책에도 나와 있지 않다. 오스트리아 → 프랑스 → 일본 → 한국을 거치며 각 문화권의 손길이 더해진 이 음식은, 진정한 의미의 혼종(Hybrid) 음식이다.
변형해 돈까스 탄생
경양식 돈까스 등장
국민 음식으로 자리잡음
파인다이닝에서 급식까지 —
돈까스가 걸어온 길
두 개의 철학 — 경양식 vs 일식
부먹과 찍먹의 세계관
돈까스 소스 논쟁이 단순한 취향 문제로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두 개의 식문화 철학이 담겨 있다.
마요네즈에 연겨자를 섞어 찍어 먹는 방법도 있다. 마요네즈의 부드러움과 연겨자의 알싸함이 바삭한 돈까스와 절묘하게 어울린다. 어떤 방법이든 공통 원칙은 하나 — 돈까스는 나오자마자 바로 먹는 것이 최선이다. 바삭함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기고 싶을 때 먹는 음식 —
한·일이 공유하는 정서
일본에서는 수능 시험 전날, 부모들이 아이에게 반드시 돈까스를 먹인다. 언어 유희에서 비롯된 풍습이다. 일본어로 '돈카츠(とんかつ)'의 '카츠(かつ)'가 '이기다'는 뜻의 동사 '카츠(勝つ)'와 발음이 같다. 무언의 다짐을 담아, 접시 위에서 무운을 빈다.
한국에서 수능날 찹쌀떡을 먹는 것과 정확히 같은 정서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잘한 일에 대한 보상을 줄 때, 우리는 돈까스를 먹으러 간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이 음식 앞에서 인간이 품는 마음은 같다 — '부디 잘 되기를'이라는 간절함.
돈까스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가족의 외식이자, 연인의 데이트 코스이자,
수험생의 다짐이자, 기사님의 든든한 한 끼다.
오스트리아의 슈니첼에서 시작해, 일본의 판코 튀김을 거쳐, 명동 경양식집의 테이블보 위에 올라앉고, 남산 야경 아래 연인들이 나눠 먹고, 급식표의 형광펜 자국이 되고, 혼밥족의 든든한 일상이 된 돈까스. 이 음식 한 접시에는 먹어온 사람 수만큼의 기억이, 그리고 먹인 사람 수만큼의 사랑이 담겨 있다.
오늘 점심, 돈까스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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