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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테리어

검은 현무암 위에 부서지는 에메랄드

by 와인병다육이세상사는이야기 2026.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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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병다육이부부 · 3박4일 제주도 여행

검은 현무암 위에부서지는 에메랄드


1일차 · 제주 서부 해안선 선셋리조트에서 카페까지

prologue
비행기 창 너머로 보이는 제주는 언제나 기대 이상이다. 그 짙은 파란 바다와, 반도 어디서도 보지 못한 검은 돌의 기묘함. 우리 부부가 제주에 발을 딛는 순간, 일상의 언어는 잠시 멈춘다.

3박4일의 첫날, 우리는 서부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했다. 목적지는 선셋리조트가 자리한 해안 절벽. 네이버 지도에서 핀을 꽂고 떠났지만,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어떤 사진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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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첫 만남 · 검은 용암 해안
수억 년의 시간이 파도에 씻기는 곳
해안 절벽에 닿자마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색이었다. 에메랄드빛 바다, 그 아래 까맣게 굳어버린 현무암. 이 극단적인 색의 대비가 제주 서부 해안을 제주답게 만드는 것이리라.

발아래 현무암은 억 년 전 화산이 남긴 흔적이다. 거칠고 울퉁불퉁하지만, 그 위에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광경은 묘하게 아름답다. 이 돌들은 매끄럽게 닳기보다 더욱 기괴한 형태로 깎여,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해수면 위로 솟아올라 있다.

파도는 매일 이 돌들을 두드리지만, 돌은 결코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강인해진다. 제주도 사람들처럼."

멀리서 보면 검은 바위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진 것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놀라운 질서가 보인다. 제각각의 크기와 형태를 가진 현무암 조각들이 마치 퍼즐처럼 맞물려 해안선을 이루고 있다. 자연은 언제나 인간의 질서 개념을 초월한다.

02. 선셋리조트 해안 산책로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는 제주의 오솔길
현무암 절벽 위로 이어지는 좁은 산책로를 발견했다. 리조트에서 관리하는 해안 둘레길인 듯, 돌을 깔아만든 소박한 길이 소나무 사이를 굽어 돌며 바다 쪽으로 이어진다. 앞서 걷는 사람의 작은 실루엣이 보였다.

길 한쪽엔 청자색 바다, 다른 쪽엔 짙은 소나무 숲. 그 사이를 걷는 일은 어딘가 현실감이 희박하다. 이 길이 끝나면 어디가 나올까,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며 상상했다.

산책로 옆으로 보이는 도시의 실루엣도 제주다웠다. 낮은 건물들이 해안선을 따라 늘어서 있고, 멀리 풍력 발전기 한 대가 바람을 먹으며 천천히 돌고 있었다. 개발과 자연이 어색하지 않게 공존하는 제주 특유의 풍경.

이 바다는 아무것도 서두르지 않는다. 우리도 그래야 할 것 같았다.
— 서부 해안 산책로에서

03. 해안 절벽 위의 작은 발견들
현무암 위에서 살아남는 것들의 이야기
절벽 위에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다 문득 시선이 발밑으로 내려왔다. 검고 거친 돌 사이사이, 초록 잎을 펼친 작은 식물들이 보였다. 염분 가득한 해풍, 뜨거운 직사광선, 빗물 한 방울도 쉽게 가두지 못하는 구멍 뚫린 현무암. 이 모든 악조건에서도 식물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수평선 위로 희미하게 보이는 풍력발전기들. 해무가 끼어 반투명하게 보이는 그것들은 마치 바다 위에 그림처럼 떠 있었다. 현무암 위에 핀 작은 덩굴, 그 너머 안개 속 풍차. 이 풍경 앞에서 카메라를 들었다가 잠시 내려놓았다. 눈으로 먼저 담아야 할 순간이었다.

"작은 것들이 모여 만드는 장대한 풍경. 그것이 제주다."

04 . 카페 타임
제주 귤이 녹아든 두 잔의 오후
산책을 마치고 들어간 카페는 현무암 담장 안에 자리한 작고 하얀 공간이었다. 메뉴판을 들여다보다 고민 없이 골랐다. 제주 귤 착즙 주스 하나, 그리고 귤 베이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음료가 나오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바깥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현무암 담 너머로 에메랄드 바다가 보였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풍경과 커피 향이 묘하게 잘 맞았다.

"귤 아메리카노는 아래부터 위로  귤의 달콤함이 커피의 쓴맛을 천천히 밀어 올리는 그 느낌이 제주 여행과 꼭 닮았다."

귤 주스는 예상보다 훨씬 진했다. 시중에서 파는 것들과 달리 걸쭉할 만큼 귤의 질감이 살아있었다. 로즈마리 한 가지와 말린 귤 슬라이스를 얹어낸 비주얼은 소박하면서도 정성스럽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투명한 잔 아래 귤 원액이 고여 있다가, 커피와 서서히 섞이며 예쁜 그라데이션을 만든다.

두 잔을 손에 들고 우리 부부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게 좋았다. 억지로 채워야 할 대화가 없는 여행. 그냥 같이 있어서 좋은 시간.

05 . 포토존 · AEVIOL THE SUNSET
분홍과 민트, 두 벤치가 바다를 보는 방식
카페 마당 한쪽, 현무암 담장을 등지고 분홍 벤치와 민트색 벤치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등받이에는 'AEVIOL THE SUNSET'이라는 문구. 이름도 예쁜 이 카페의 감각이 벤치 하나에도 그대로 담겨 있었다.

배경은 현무암 담, 그 너머로 쪽빛 바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이 조합이 어찌나 깔끔한지, 자연 배경에 색감을 입힌 한 장의 그림엽서 같았다.

우리는 번갈아 앉아 사진을 찍었다. 여행지에서의 사진은 그 순간의 감각을 보존하는 행위다. 나중에 이 사진을 꺼내보면, 분명 귤 향기와 파도 소리, 그리고 그날의 햇살이 함께 떠오를 것이다.

"노을을 기다리는 벤치, 하지만 대낮에 봐도 충분히 아름다운. 기다림 없이도 좋은 것들이 있다."

06 . 리조트 주변 드라이브
제주에도 야자수가 있다 — 그것도 이렇게 많이
카페를 나와 리조트 주변을 드라이브하다 예상치 못한 광경을 만났다. 현무암 담장으로 구획된 밭 위로, 이식 작업 중인 것으로 보이는 야자수들이 빼곡히 서 있었다. 아직 지지대를 받고 서 있는 어린 야자수들, 그러나 그 수가 수십 그루는 됨직했다.

제주에 야자수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한국의 화산섬, 그러면서도 남국의 분위기를 풍기는 이 독특한 조합. 야자수 뒤로 보이는 제주 특유의 낮은 스카이라인과 검은 돌담이 묘하게 어울렸다.

현무암 담장 너머 줄지어 선 야자수들 · 제주 서부

검은 돌담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천천히 달렸다. 도로 한쪽은 야자수 밭, 다른 쪽은 소나무를 안은 하얀 리조트 건물. 이 길을 걷다 보면 여기가 제주인지, 어디 이국인지 헷갈릴 것 같았다. 그 혼란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여행의 묘미가 거기에 있었다.

낯선 것과 낯익은 것이 한 길 위에 공존할 때,
여행은 가장 여행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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