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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테리어

우연히 스며든 초록 동백동산과 한라수목원

by 와인병다육이세상사는이야기 2026.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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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 감성 블로그 — 동백동산과 한라수목원

제주 3박4일 여행기 · 와인병다육이부부

우연히 스며든 초록,
동백동산과 한라수목원

계획 없이 들어선 숲에서 가장 깊은 쉼을 만났다

제주 선흘곶 동백동산 · 한라수목원 3박4일 제주 여행 중 오후 부부 여행

커피 한 잔이 이끈 뜻밖의 오후

점심을 먹고 나니 달달한 커피가 생각났다. 인근에 꽤 유명하다는 카페로 향했지만, 평일 오후의 제주 어느 골목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카페에 막 도착해 내려가려는 찰나, 앞서 걷던 젊은 부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꽃도 없고 볼 게 없네."

그 말에 우리도 발걸음을 다시 거뒀다. 어차피 커피보다 더 좋은 것을 만날 것 같은 예감이랄까. 차를 돌리는 길, 멀리 나무 현판이 보였다. 동백동산. 이름 하나만으로도 어딘가 서늘하고 깊은 곳일 것 같아서, 우리는 그냥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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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흘곶 동백동산  람사르 습지의 고요

동백동산습지센터 건물 앞에 서자 금빛 한자로 새겨진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동백동산습지센터 — Dongbaekdongsan Ramsar Wetland.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람사르 습지, 세계지질공원. 그 거창한 수식어들이 무색하게, 막상 안으로 들어서니 그저 조용한 숲이었다.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지형 위에, 비가 고이고 이끼가 자라고, 동식물이 쌓여 만들어진 곳. 1948년 4.3의 아픔이 깃든 마을 사람들의 삶터이기도 했다는 안내판의 문장이 마음 한켠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나무 현판 아래 두 돌하르방이 지키고 선 숲 입구. 짚으로 만든 옷을 걸친 돌하르방은 무언가 오래된 기억을 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말없이 그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정원 안쪽으로는 물억새가 무성한 습지와 아담한 잔디밭이 펼쳐졌다. 잔디 위에는 돌을 다듬어 만든 작은 조각상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기타를 안고 웃음 짓는 돌 인물상, 명상하는 듯한 단순한 형태의 석상. 어떤 설명도 없어도 충분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채 그 자리에 오래 있었을 것들.


한라수목원  나무들의 시간 속으로

동백동산을 나와 이번엔 한라수목원으로 향했다. 주차장 너머로 보이는 나무들의 실루엣이 벌써부터 다른 세계를 예고하는 것 같았다. 입구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입장할 수 없습니다' 는 안내 현수막과 금연 표지판이 나란히 서 있었다. 이곳이 정말 조심스럽게 지켜야 할 자연임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것처럼.

숲 안으로 들어서니 시간이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이끼 낀 나무들이 서로 가지를 기대며 만들어 낸 초록 터널. 낙엽이 수북이 쌓인 흙길 위로 빛이 조금씩 새어 들었다. 교목원(Trees Garden) 이정표 앞에 놓인 통나무 벤치 하나가, 마치 '여기 잠깐 앉아 가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길 끝에서 작고 하얀 꽃을 발견했다. 아직 꽃봉오리를 가득 단 채 막 피어나기 시작한 수국. 뒤를 돌아보니 그이가 그 꽃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뒷모습이 초록 안에 녹아들었다. 굳이 말을 걸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었다.


계획 없이 만난 것들의 온도

커피 한 잔을 마시려다 결국 두 개의 숲을 걸었다. 어떤 여행이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계획한 곳이 아니라 우연히 들어선 자리인 경우가 많다. 꽃도 없고 볼 게 없다던 그 젊은 부부는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그 시간 내내 꽃보다 더 많은 것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돌하르방의 짚망토, 기타를 안고 웃는 돌 인물상, 막 피어나는 수국 한 송이, 그리고 초록 터널 속 당신의 뒷모습. 제주는 늘 그런 식으로 우리를 안아준다.

오늘도 제주 어딘가에선 동백동산의 물억새가 흔들리고 있겠지. 한라수목원의 수국은 조금 더 피었을 테고.

우연히 멈춘 그 자리가, 여행의 가장 좋은 장면이 되었다.

 

와인병다육이세상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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