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최씨 화숙공파 · 참의공파 — 뿌리를 바로 아는 역사 이야기
천 년을 이어온 가문의 뿌리, 올바르게 읽는 법
먼저 알아야 할 핵심 개념: 비조 · 중시조 · 파조
족보를 읽다 보면 세 가지 개념이 자주 혼용되어 혼란이 생깁니다.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 우리 조상을 "바르게 아는" 첫걸음입니다.
비조(鼻祖)는 문헌에 기록된 가장 먼 조상을 뜻합니다. 경주최씨의 비조는 소벌도리(蘇伐道利)입니다. 소벌도리는 신라 초기의 신화적 인물로 서라벌 6촌 중 돌산고허촌의 촌장이었으며, 나정(蘿井)에서 붉은 알을 발견하여 박혁거세를 양육하고 신라 건국을 도운 개국공신입니다. Wikipedia 유리왕 때 6부 촌장들에게 성씨를 내릴 때 그는 '높은 곳'을 의미하는 한자 **최(崔)**를 하사받았습니다.
중시조(中始祖)는 오랜 세월 계보가 끊겼다가 다시 확실히 이어지는 지점의 조상입니다. 경주최씨의 중시조가 바로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입니다. 중시조 최치원은 소벌도리의 24세손이며 신라의 6두품 출신으로, 12세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을 떠나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한 대문장가입니다. Wikipedia
작성자(후손 최 ㅇㅇ 별명 와인병다육이)의 질문에 답하다: "최치원은 시조인가, 중시조인가?"
첨부 글의 작성자께서 핵심적인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대다수는 최치원을 시조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소벌도리의 24세손이다. 그렇다면 소벌도리를 숭모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이 질문은 매우 정당합니다. 경주최씨는 신라 사량부 촌장 소벌도리를 원조(元祖)로 하고, 그의 24세손이며 신라 말기의 대문장가인 최치원 선생을 시조(始祖)로 하여 본관을 경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온 것 Xn--ob0b54r1kh89g이라는 것이 종중의 공식 기록입니다. 다시 말해 공식 족보에서도 소벌도리는 원조(비조)이고 최치원은 중시조로 기록됩니다. 최치원을 '시조'라 부르는 것은 편의적 관습이지, 그가 성씨의 최초 조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따라서 작성자의 견해는 역사적으로 정확합니다. 소벌도리는 최씨 성의 실질적 원조이며, 최치원은 기록상 확실히 이어지는 계보의 출발점입니다. 두 분 모두 각자의 위상에서 숭모받아 마땅한 조상입니다.
경주최씨, 어떻게 26파로 나뉘었나?
경주최씨는 최치원의 후대에서 관가정공파(觀稼亭公派), 광정공파(匡靖公派), 정랑공파(正郞公派), 사성공파(司成公派), 화숙공파(和淑公派), 충렬공파(忠烈公派) 등 6대파를 주축으로 총 26파로 분파되어 세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Wikipedia
우리가 살펴볼 화숙공파(和淑公派)는 이 6대파 중 하나입니다. 화숙공파의 파조인 최현우(崔玄祐)는 최치원의 9세손으로, 고려 충숙왕 때 서해도 안렴사를 지냈고 명망이 두터웠으며 벼슬이 문하시중에 이르러 가문을 더욱 빛냈습니다. Ugyo '화숙(和淑)'이라는 시호를 받은 그의 이름을 따서 후손들이 스스로를 화숙공파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화숙공파를 빛낸 세 거인
화숙공파에서 역사에 가장 깊은 흔적을 남긴 인물은 단연 세 사람입니다.
수운(水雲) 최제우는 19세기 조선 후기 혼란 속에서 "사람이 곧 하늘이다(인내천)"라는 평등사상을 담아 동학(東學)을 창시한 교조입니다. 신분제가 굳건하던 시대에 가장 급진적인 인간 존엄의 선언을 한 사상가였습니다.
면암(勉庵) 최익현은 개항 반대와 척사위정운동을 이끌었고, 70대의 노구에도 항일 의병을 일으킨 충절의 표상입니다. 쓰시마에 유배되어 단식으로 순국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삶으로 증명했습니다.
외솔 최현배는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지켜낸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입니다. '외솔'이라는 호처럼 홀로 꿋꿋이 한글의 가치를 붙들었습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시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포천 가채리와 참의공파 — 뿌리 내린 땅의 이야기
화숙공파 안에서 파생된 참의공파(參議公派)는 파조 **최유온(崔有溫)**이 조선시대 정3품 당상관인 참의(參議)를 지낸 데서 이름을 얻었습니다.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 일대는 이 참의공파의 대표적 집성촌으로, 수대에 걸쳐 선조들의 가풍과 숨결을 간직해 온 유서 깊은 터전입니다.
작성자께서는 "최가채리의 시조는 최무석 할아버지를 숭모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도 던지셨습니다. 이것도 매우 의미 있는 물음입니다. 가채리라는 특정 지역에 처음 뿌리를 내린 입향조(入鄕祖)는, 파조와는 별개로 그 땅에서 살아온 후손들에게 각별히 숭모받아야 할 조상입니다. 소벌도리 → 최치원 → 최현우 → 최유온 → 최무석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대(大)에서 소(小)로', 즉 거대한 가문의 역사에서 내 직계 뿌리의 역사로 좁혀 들어가는 구조입니다. 각각의 인물은 서로 다른 위상에서 모두 숭모의 대상이 됩니다.
역사를 바르게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최씨의 원조인 소벌도리는 사로국 6촌의 하나인 돌산고허촌의 촌장이며, 신라 유리왕 때 최씨 성을 하사받았습니다. Daum 이 사실을 모른 채 최치원을 '시조'로만 외우는 것은 2천 년 가문 역사의 앞부분 800년을 지우는 셈입니다.
우리 조상을 바르게 아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소벌도리의 개국정신, 최치원의 학문과 기개, 최현우의 치적, 최유온의 충절, 최무석의 입향(入鄕)… 이 긴 이야기를 온전히 알 때 비로소 우리가 어떤 뿌리에서 자라난 사람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문의 역사는 암기해야 할 족보가 아니라, 살아있는 정신의 계보입니다.
이 글은 경주최씨 화숙공파·참의공파 관련 문헌과 작성자의 소중한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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