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병다육이 부부의 제주도 3박 4일 — 3일차
비 오는 섬에서,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제주의 하늘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숙소 베란더에서 바라본 풍경은 파란 외벽, 오름들이 구름 속에 반쯤 잠긴 모습, 그리고 현무암 돌담 너머로 펼쳐진 초록빛 들판 비에 젖어 더욱 선명하고 짙었다. 사방을 한 바퀴 둘러보니 제주는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도 그림이었다. 흐린 날의 제주는 맑은 날보다 오히려 더 솔직하게 속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섭지코지, 왈프가 사랑에 빠진 곳
왈프가 말했다.
"섭지코지 한 번 더 가자. 어제 너무 좋았어."
비가 쏟아지는데도 그 눈빛이 진지했다. 결국 우리는 다시 섭지코지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말이 없어도 충분했다. 검은 현무암 해안 위로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고, 빗속에서도 바다는 영롱한 청록빛을 잃지 않았다. 풀들은 바람에 제멋대로 흔들리고, 수평선은 안개 속으로 번지며 사라졌다. 우리는 차 안에서, 유리창에 빗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리는 것을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참 좋았다.
파도 소리만으로 가득 찬 그 시간이.
결국 빗속 섭지코지는 온전히 걷지 못했다. 우리는 약속했다.
"다음에 꼭 다시 오자. 맑은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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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일출봉 아래, 할매의 전복죽
섭지코지를 뒤로하고 우리는 성산일출봉 근처 작은 식당으로 향했다. 오래된 간판, 나무 의자, 창문에 그려진 해녀 그림 딱 봐도 수십 년은 됐을 법한 토속 밥집이었다.


들어서니 일본에서 온 아주머니들 단체가 먼저 와 있었다. 외국 손님이 찾아올 만큼 소문이 난 집이구나 싶었다. 다른 테이블에선 중년 남성 두 분이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주식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꽤 전문적인 얘기를 주고받는 눈치였다. 나도 모르게 증권 앱을 열어봤다. 요즘은 식당에서도, 여행지에서도, 사람들의 눈은 자꾸 숫자 쪽으로 향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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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죽이 나오기 전, 창밖을 바라보며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빗속에 흐릿한 오름, 빗물이 고인 도로 그 평범한 창밖 풍경이 이상하게 정겨웠다.
그리고 드디어 전복죽이 나왔다.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커다란 흰 그릇 가득, 짙은 초록빛 전복죽.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바다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곁들여 나온 반찬들도 예사롭지 않았다 톳무침, 물김치, 파래 무침 같은 제주 토속 반찬들이 소박하게 놓였는데, 그 하나하나에 이 섬의 냄새가 담겨 있었다.
관광객을 위한 화려함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제주 사람들이 먹어온 그대로의 음식이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비가 와도, 괜찮아
비 오는 제주는 처음엔 아쉬웠다.
하지만 하루를 다 보내고 나니 비 때문에 차 안에서 더 오래 얘기 나눴고, 비 때문에 섭지코지에서 더 오래 멍하니 앉아 있었고, 비 때문에 따뜻한 전복죽 한 그릇이 더 깊이 몸에 스며들었다.
여행은 날씨가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함께하는 사람이 만드는 거라는 걸 와인병다육이 부부는 오늘 또 한번 배웠다.
비가 와도, 괜찮아 제주여, 조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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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병다육이세상사는이야기
창조적이고 유니크한 와인병다육이의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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