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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테리어

아쿠아플라넷 제주 바다 앞에 서다

by 와인병다육이세상사는이야기 2026.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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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플라넷 제주, 바다 앞에 서다 

와인병다육이부부 제주 3박 4일

섭지코지에 처음 발을 내딛던 순간, 바람이 먼저 나를 알아봤다.
제주의 바람은 서울의 그것과 다르다. 그냥 부는 게 아니라, 온몸을 훑고 지나가며 "여기가 어딘지 알아?"라고 묻는 것 같다. 잔뜩 흐린 하늘, 짙은 회색빛 구름이 바다 위로 낮게 깔린 날이었다. 관광지의 화사한 사진들과는 거리가 먼 날씨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꾸미지 않은 제주, 날것의 제주를 만난 기분이었으니까.

섭지코지 바깥에서 올려다본 아쿠아플라넷 건물은 묘하게 압도적이었다. 거대한 유리 파사드가 흐린 하늘을 통째로 담아내고 있었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밖에서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건물 앞 광장에는 돌하르방들이 조용히 서 있었고, 그 너머로 성산일출봉의 실루엣이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날씨가 맑았다면 더 선명했겠지 싶었지만, 안개처럼 흐릿하게 떠오른 그 봉우리가 오히려 한 폭의 수묵화 같아서, 나는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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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플라넷 안으로 들어서면, 세상이 바뀐다.
입장과 동시에 파랗게 물든 공간이 눈을 가득 채운다. 빛이 다르다. 형광등의 하얀 빛이 아니라, 수조에서 새어 나오는 깊고 푸른 빛이 공간 전체를 적신다. 마치 내가 물속에 들어온 것처럼.
입구 홀 천장에는 거대한 상어 모형이 매달려 있었다. 줄에 늘어진 작은 물고기 조각들과 함께, 제주 앞바다를 배경으로 실루엣처럼 떠 있는 그 조형물 앞에서 나는 한참 고개를 젖혔다. 유리창 너머로는 성산일출봉과 제주 바다가 함께 보였다. 실제 바다와 수족관이 겹쳐 보이는 그 순간, 어디서부터가 자연이고 어디서부터가 인공인지 경계가 흐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대형 수조 앞에 섰다.
말이 필요 없었다.
수십, 아니 수백 마리의 물고기가 흐르듯 유영하고 있었다. 은빛 가오리가 유리 바로 앞을 스치듯 지나갔고, 점박이 무늬의 거대한 자이언트 그루퍼는 느릿하게, 마치 자기가 이 공간의 주인인 것처럼 떠다녔다. 상어도 있었다. 모래 바닥을 스치며 유영하는 상어는 생각보다 훨씬 우아했다. 사납다기보다는 고요하고 단단한 존재감이랄까. 위에서는 가오리가 날개를 펼치며 천천히 선회하고, 아래에서는 상어가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그 수조 안의 세계는 제 나름의 리듬으로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검은 재킷에 청바지를 입은 한 사람이 수조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뒷모습뿐이었지만, 그가 무엇을 느끼는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나도 그랬으니까. 말을 잃고, 그냥 서서, 그냥 보는 것. 수조 앞에서는 누구나 조금씩 어린아이가 된다.
위에서 내려다본 수조는 또 달랐다. 상어와 가오리가 바로 발아래에서 헤엄치는 장면은,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햇살처럼 비치는 조명이 물속으로 기둥처럼 내려앉고, 그 빛 속을 물고기들이 유유히 가로질렀다. 생각해보면, 저 안의 생명들은 매일 이 하루를 산다. 늘 같은 물속에서, 같은 빛 아래, 하지만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그게 왜인지 마음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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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 샵은 사실,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들어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기 상어 인형, 가오리 쿠션, 통통하고 귀여운 해마 봉제 인형들이 가득한 공간은 방금 전 수조 앞에서 느꼈던 묵직한 감정을 사르르 녹여버렸다. 핑크 펭귄, 파란 펭귄, 인어 인형, 알록달록한 동물 인형들이 빼곡히 늘어선 선반은, 여행을 하나의 귀여운 기억으로 소환하는 공간 같았다.
수족관에서 숙연해졌다가, 기념품 샵에서 다시 들떠지는 이 감정의 진폭이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장 통로 끝에는 "See you, again!" 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아쿠아플라넷 제주의 작별 인사였다. 사육사들의 일상을 담은 따뜻한 일러스트들, 바다별이 마음속에서 영원히 반짝이기를 바란다는 한국어 문구. 바다를 직접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 공간이 바다를 대신해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짧게 중얼거렸다.
응, 또 올게.

섭지코지의 바람은 나오는 길에도 여전히 불고 있었다. 흐린 하늘, 붉은 보도블록, 그리고 저 멀리 성산일출봉. 이 풍경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한 번 더 돌아봤다. 흐린 날의 제주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제주 3박 4일 중 하루, 나는 바다 안으로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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