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숨결을 담다 한림수목원에서
와인병다육이부부의 제주여행기 · 한림수목원
소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서는 순간, 제주의 공기가 달랐다.
한림수목원은 범상치 않았다. 돌하르방이 우리를 맞이했고, 그 뒤로 초가지붕을 얹은 건물이 나직하게 앉아 있었다. 간판에는 '돌하르방'이라 쓰여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정겨웠다. 돌로 빚어진 말 조각들이 마당 곳곳에 서 있고, 현무암으로 쌓은 돌담 위로는 초록이 넘쳐흘렀다. 아, 여기가 제주구나. 새삼 실감이 났다.

발걸음을 옮기자 초가지붕이 둥글게 내려앉은 한옥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앞에 손님이 먼저 와 있었다. 꼬리를 질질 끌며 유유히 걸어다니는 공작새 한 마리. 화려하게 치장한 것도 아니고, 꼬리를 활짝 펼친 것도 아니었는데, 그 무심한 걸음걸이가 오히려 더 우아했다. 주인처럼 처마 밑을 드나드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발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봤다.
공작새는 우리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래, 여기선 공작새가 주인이고 우리가 손님이지.



조금 더 걷자 또 다른 마당이 열렸다. 현무암 돌담 안으로 초가집이 오순도순 모여 있고, 그 앞에는 돌로 만든 말과 망아지 조각이 나란히 서 있었다. 어미 말이 고개를 숙여 망아지 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어찌나 사실적인지, 잠깐 살아있는 것으로 착각할 뻔했다. 옆에는 제주 전통 맷돌도 있었고, 작은 돌하르방도 수줍게 앉아 있었다.
제주 돌, 제주 집, 제주 바람. 이 수목원은 식물원이기 이전에 제주 그 자체를 모아둔 공간 같았다.



새들의 구역으로 발걸음이 이어졌다. 칠면조(칠면조의 학명 Meleagris gallopavo가 쓰인 안내판이 귀여웠다)가 철망 안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아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 옆 우리에서는 백공작이 돌을 원형으로 쌓아 만든 물그릇 곁에 고요히 앉아 있었다. 새하얀 깃털이 빛 속에서 가만히 빛났다. 그리고 타조. 긴 목을 뻣뻣하게 세운 채 우리 안을 거닐며 주변을 살폈다. 눈이 마주치자 괜히 내가 먼저 눈을 피했다.


마지막으로 걸은 길이 가장 아름다웠다. 붉은 벽돌 산책로 양쪽으로 소철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그 너머로 야자수와 소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길 끝에는 용을 닮은 조각상이 초록 숲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었다. 파란 하늘, 짙은 초록, 붉은 길.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둘이서 나란히 그 길을 걸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게 좋았다.



한림수목원은 화려하지 않다. 요란하지도 않다. 그냥 제주답게, 조용하고 단단하게 거기 있었다. 공작새도, 타조도, 돌하르방도, 초가집도 — 모두가 제 자리에서 제 모습으로.
우리 부부도 그렇게, 제 자리에서 제 모습으로 제주를 느끼고 왔다.
다음 편 · 한림수목원 마지막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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