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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테리어

보롬왓 흐린 날에 찾아온 초록의 위로

by 와인병다육이세상사는이야기 2026.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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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롬왓, 흐린 날에 찾아온 초록의 위로


아침부터 서두르다 보니 속이 허하고, 달달하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절실해졌다. 제주의 하늘은 흐릿하게 드리워져 있었고, 그런 날일수록 왠지 더 뜨끈한 무언가가 그리워지는 법이다. 그렇게 발걸음이 향한 곳이 보롬왓(Boromwat)이었다.

처음엔 그냥 카페겠지 싶었다. 그런데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예사롭지 않았다. 평일인데도 관광버스가 떡하니 서 있고, 사람들의 발길이 제법 이어지고 있었다. 입구 앞, 녹슨 코르텐 철판으로 만들어진 사인보드에 "boromwat — BUCKWHEAT CACAO ROASTERY" 라는 글씨가 담담하게 새겨져 있었다. 오픈 09:00, 클로즈 18:00.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단정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눈 앞에 펼쳐진 공간이 심상치 않았다. 매끈한 콘크리트 벽면과 나무, 그리고 초록. 이 세 가지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카페라기보다는 하나의 세계에 들어선 느낌이랄까.

공간 한편에는 보롬왓 자체 브랜드의 로스팅 머신이 우뚝 서 있었다. 육중한 검은 기계 앞에는 분필로 쓴 안내판이 기대어 있었다.

"메밀베개 작업 중입니다. 기계 안의 메밀껍질은 눈으로만 봐주세요."

메밀을 볶는 소리, 코끝을 스치는 구수한 냄새. 이곳이 단순한 커피 카페가 아님을 직감했다. 메밀과 카카오를 품은, 제주의 땅을 담은 공간이었다.

전시대 위에는 오래된 나무 소반, 토기, 절구, 바구니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마치 제주의 오래된 부엌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전시였다. 그 위에 놓인 메밀 낱알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고 검붉은 것들이 수백 년의 시간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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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온실로 이어지는 동선. 보롬왓의 진짜 매력은 여기서부터였다.

초록이 터져 나왔다. 포도 넝쿨이 천장을 타고 뻗어 있고, 바나나 나무가 제주의 습한 공기 속에 싱그럽게 서 있었다. 수국이 연보라, 파란색, 분홍색으로 다닥다닥 피어 있었고, 부겐빌레아의 진홍빛이 나무 팔레트 담장을 타고 흘러내렸다. 황금색 메리골드는 검은 화분 속에서 도도하게 빛났다.

벽에는 박쥐란이 나무판에 붙어 자라고 있었고, 어딘가에는 "The Lost Santa Club" 이라 쓰인 작은 빨간 집이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한편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반짝 불을 밝히고 있는 "Santa's Junction"  6월인데도, 그 공간만큼은 12월이었다.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서야 커피를 받아 들었다. 라테 한 잔과 카카오 라테 한 잔. 창밖으로는 드넓은 초록 들판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오름이 구름 속에 묻혀 있었다. 제주 특유의 완만한 능선이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그런데 그 들판에서 눈길을 끄는 한 쌍이 있었다.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세미 정장 차림의 신랑. 카메라 앞에서 청춘을 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 초록 속에서 참으로 눈부셨다.

함껏 청춘을 즐겨라. 미래를 위하여, 오늘을 즐기고 또 즐겨라.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삼키며 속으로 조용히 응원을 보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밖으로 나서는 순간, 숨이 확 트였다. 흐린 하늘 아래 드넓게 펼쳐진 보롬왓의 들판. 사방이 초록이었다. 달달하고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눈 가득 담아온 초록의 위로.

오늘 아침은 그걸로 충분했다.

다음 편에서는 보롬왓에서 만난 획기적인 체험형 이벤트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기대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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